헤세의 전작들 중 5권을 구입했습니다.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그리고 유리알 유희까지.
헤세의 소설은 사실상 자아를 찾고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주는 작가이기에 그의 소설이 지금의 제 모습에서는 매우 필요한 책들이라는 생각이었지요.
뭘 먼저 읽을까 생각을 하다가 여기저기 물어보니, 싯다르타를 먼저 읽는 것이 나을 것이라 조언을 해주더군요. 특히나 데미안을 읽기전에는 먼저 싯다르타를 읽는 것이 낫다고.
(그런데 사실,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데미안을 읽고 싯다르타를 읽는 것이 보다 더 완성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출간연도로 봐도 데미안이 먼저더군요.)
싯다르타는 헤세가 작품을 집필하는 도중에 인도로 여행을 가서 직접 체험을 하고 나머지 남은 분량을 모두 썼다고 합니다. 체험해보지 않은 것은 말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작가 스스로 보여준 셈인데요, 정말이지 읽어보면 이것은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쓸 수 없을만큼 매우 깊은 사유세계를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독후감을 쓰기에는 이 책이 너무도 많은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압축하지 못하겠고 오히려 이 소설을 통해 철학을 접한 느낌이라 생각과 글이 짧은 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차라리 이 책을 읽으며 탄복하였던 구절들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몇번이고 읽으며 익혀보고자 합니다. 소설을 통해 공부하게 되는 경우는 처음인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처음 던지고 있는 내용인 진리나 지혜라는 것 역시, 이 책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 *
1. 깨달음
모든 깨달음은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다.
비로소 스스로가 모든 것을 체험하였을 때 그 사실을 제대로 알 수가 있다.
진실로 道를 구하고자 하는 자라면,
진실로 道를 얻고자 하는 자라면,
어떠한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법이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다.
2. 시간과 인간의 존재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江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즉시,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즉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힘겨운 일과 모든 적대감이 제거되고 극복될 수 있다.
그러니 일체의 번뇌의 근원은 시간이다.
한 인간이나 한 행위가 전적인 윤회나 전적인 열반인 경우란 결코 없으며,
한 인간이 온통 신성하거나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란 결코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시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현세와 영원 사이에, 번뇌와 행복 사이에,
선과 악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간격이라는 것도 하나의 착각
인 셈이다.
3.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부여된 동등성
모든 생명의 단일성을 의식하여야 한다.
생각한다는 점을 제외한 그 밖의 다른 모든 점에서는 세속적 인간들이 賢人
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으며, 현인을 훨씬 능가할 때도 자주 있었다.
일체의 소리들, 일체의 목적들,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
체의 선과 악,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합해져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
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어린애들은 모두 자기 내면에
이미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
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
4.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진리를 위한 것
나는 육신의 경험과 스스로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의 존재라는 사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사물들을 그토록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고 그토록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네.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
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네.